본문 바로가기
기타

샤넬 역사 과거부터 현재까지

by 멍리뷰 2022. 11. 14.

안녕하세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샤넬 역사 썸네일

 

샤넬의 탄생

 

샤넬의 창립자는 가브리엘 샤넬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어릴 적 잡상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며 훗날 어른이 된 샤넬은 버림받은 날을 두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샤넬은 군인들이 주 고객이었던 뮤지컬에서 가수로 활동했으며 여기서 코코라는 별명을 얻게 되어 훗날 코코샤넬로 불리게 됩니다.

 

샤넬은 공장을 운영하는 금수저 연인 발장과 만나게 되었고 발장은 샤넬에게 자신의 저택에서 생활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샤넬처럼 생활하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귀족을 따라 하기 위해 귀부인 풍의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하지만 샤넬은 마른 체형이라 그런 스타일의 옷을 싫어했고 간편하고 깔끔한 스타일의 옷을 직접 제적하여 사용했습니다.

 

 

샤넬이 알려진 계기

 

샤넬은 평생 동안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이자 발장의 친구인 아서 카펠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마찬가지로 금수저였던 그의 도움을 받아 샤넬의 첫 매장인 샤넬 꾸뛰르 하우스를 파리 깡봉가에 차리게 됩니다. 샤넬은 훗날 아서 카펠을 만난 것을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고 내가 사랑한 사람은 아서 카펠이 유일하다며 그는 자신에게 오빠이자 아버지이며 가족이라고 하였습니다.

 

샤넬은 사업가였던 아서 카펠의 조언을 받아 휴양지인 도빌에 두 번째 가게를 차리게 됩니다.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샤넬의 옷은 휴양지에서 편한 옷을 입고 즐기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샤넬은 전쟁이 발발해도 가게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피난을 온 전 유럽의 귀족들에게 샤넬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남자들이 줄어들자 여성들의 사회생활의 증가하였고 불편한 귀부인 옷보다 샤넬의 편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옷을 더욱 찾게 되어 샤넬의 명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연인의 죽음

 

사업가인 아서 카펠은 샤넬을 사랑하지만 사정상 샤넬이 아닌 귀족 여성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샤넬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샤넬은 아서 카펠의 결혼을 계기로 단발머리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또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서 카펠이 교통사고를 당해 갑작스럽게 죽자 샤넬은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자신 주위의 모든 것을 검은색으로 바꾸었습니다.

 

 

샤넬 로고와 샤넬 NO. 5

 

아서 카펠의 죽음 이후 샤넬은 여러 남자를 만났고 그중 한 명인 러시와 황제의 조카 드미트리 대공과 휴가를 갔다가 향수를 만들던 에르네스트 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향수를 만들고 싶어 했던 에르네스트 보에게 시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에르네스트 보는 샤넬에게 10가지 시제품을 가져왔고 5번째 제품을 선택한 샤넬은 샤넬 NO. 5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921년 5월 5일 출시된 샤넬 NO. 5에 처음으로 샤넬의 CC 로고가 붙게 됩니다. 샤넬 NO. 5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광고모델로 삼아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인기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샤넬의 위기

 

샤넬도 항상 승승장구만 하진 않았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여 향수와 액세서리 매장을 제외한 모든 매장이 문을 닫았고 독일의 스파이 의심을 받았던 샤넬은 프랑스에서 추방까지 당하게 됩니다. 추방당한 후 스위스에서 잊혀가던 샤넬의 자리를 디올이 차지했고 유럽에 더 이상 설자리가 없었던 샤넬은 상황을 해결하고자 미국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미국은 샤넬의 과거에 관심이 없었고 유럽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샤넬의 패션이 미국에서는 통하게 됩니다. 또한 과거 연을 쌓아두었던 러시아 망명 귀족들의 도움도 샤넬의 복귀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샤넬은 또 고비를 맞이하는데 샤넬 NO. 5를 생산할 때 협력했었던 베르타이머 가문과 이권싸움을 하게 됩니다. 치열한 이권 싸움 끝에 샤넬이 모든 생활에 관한 복지를 죽을 때까지 약속받으며 베르타이머 가문과 화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베르타이머 가문은 지금도 샤넬의 최대 주주로써 활동하고 있습니다.

 

 

코코샤넬의 마지막

 

코코샤넬은 1971년 83세의 나이로 타계하게 됩니다. 살아생전 외롭게 일에만 몰두했던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손녀들에게 너희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며 혼자 살아온 삶의 외로움을 표현했습니다. 

 

 

칼 라거펠트의 샤넬

 

코코샤넬의 죽음 이후 몰락해가던 샤넬을 손자인 알랭 베르타이머가 새 경영진을 뽑고 패션왕 칼 라거펠트를 영입함으로써 샤넬을 다시 부흥시키게 됩니다. 1983년 영입된 칼 라거펠트는 과거 코코샤넬의 사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하여 코코샤넬의 스타일에 자신의 영감을 불어넣어 샤넬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되살려내게 됩니다. 칼 라거펠트 부임 이후 샤넬은 많은 변화를 꾀하면서 계속 성장해 왔으며 앞으로도 좋은 명품 브랜드로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상으로 명품 브랜드 샤넬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편안하면서도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명품 브랜드 샤넬에 대한 정보를 통해 독자님들의 현명한 소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